[260124 저녁 7:43] 토요일 저녁 잘 보내고 계십니까
- 처음으로 보내는 메일링 서비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드리게 되어 두근거리네요. 토요일 저녁인데,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저는 큰맘 먹고 방어를 시켰습니다. 사실 방어는 지금이 맛있을 때잖아요. 오늘 새벽에는 친정이 이사를 해서 들렀다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가 어떻게 컨트롤하기에 점심나절에 돌아왔어요. 햇볕이 나더라고요. 영하 4도였기는 한데 이렇게 볕이 나면 세탁기와 배수관이 얼 것 같진 않아서 크게 한번 질렀습니다. 쌓인 빨래를 돌렸다 이 말이에요.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의 영향으로 내내 영하 10도 아래였죠, 이번 주. 축축한 빨래가 차곡차곡 쌓여서 날씨 풀리고 난 다음에 모아서 세탁하려면 상당히 불쾌하고 불편하고 제때 끝내지도 못할 그런.
- 퇴사도 딱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 전에 페이스북에 수치심 이야기를 했잖아요. 굳이 메일링 서비스 신청해 주신 분이시라면 기억을 하실 것 같아요. 저에게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창피함이 있어요. 뭐든 능숙해지기 전에는 너무너무 서투르다는 거예요. 에이 남들 다 그렇지, 사람 다 똑같지 싶을 수도 있는데, 진짜로 그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있지 생각하게 될 만큼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연이어서 해버리는 거죠. 모든 처음에 항상 그래요. 근데 그게 이제... 어쩌다가 사회생활 10년을 온실 속 잡초로 어영부영 보내고 나면 신입도 이런 실수를 안 하겠다 싶은 것까지 와르르륵, 해버리는 거죠. 영하의 날씨에 얼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며 방치되고 쌓여 있는 수치심.
- 이쯤 끊어내고 어디론가 새로운 곳에 가서 배우지 않으면, 구르지 않으면 이렇게 X신 같은 채로 애매한 보호와 떠받듦을 받으면서 사람이 못쓰게 되겠더라고요. 이 빨래더미가 쌓이고 쌓여서, 그러니까 실제로는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수치심이 켜켜이 누적되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선 거예요. 대책 없이 지른 퇴사라 오는 봄이 걱정되긴 해요. 봄은 찬란하고 아름다운데 그건 창문 밖을 잠깐 넘겨볼 때 그런 것이고 사실은 대청소를 하는 계절, 노동의 계절인 거죠. 그러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아직 월급 나오는 지금 대방어를 시켰습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요.
- 먼저 말 걸어 주신 건 당신이라고 생각해요. 먼저 인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도 내리고 춥고 그런데 우리 밥 먹고 합시다. 식사 하셨으면 따듯하고 단 거라도 하나 더 챙겨 드시고. 일요일 잘 보내시고, 월요일 힘내시고, 화이팅이에요.
정인 드림.